Korea/궁궐이야기2010.12.21 06:45




조선 말 역사의 중심을 만난 운현궁(雲峴宮).

조선말에서 구한말로 넘어가는 역사 격동의 시기,
그 시기에 가장 파란만장했던 삶을 살았던 사람은 누구일까?

여러 사람을 꼽을 수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첫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이하응,
즉 우리가 '흥선대원군' 이라고 부르는 인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역사속에서 발견되는 그의 업적이나 과오와는 상관없이 한 인간,
 우리보다 먼저 이 땅을 살다 간 '단순히 한 사람의 개인적인 삶' 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보더라도
흥선대원군의 인생은 파란만장 곱하기 100 에다 스펙타클 곱하기 50을 더한 값 쯤으로 생각됩니다.

그의 굴곡많은 삶만큼 그에 관한 '평가' 도 굴곡이 심합니다.
경사 심한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이하응' 이라는 이름이 받는 평판은,
위와 아래간의 낙차가 상당히 심해 때로는 아찔하기 까지 합니다.

그런 시대의 풍운아, 흥선대원군이 살았던 곳이 '운현궁'입니다.

그리고 '고종'이 태어나서 왕위를 계승 받기 전까지 자란 곳도,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가 행해진 곳도,
흥선대원군이 고종을 '섭정'하며 당시 조선의 정치를 쥐락펴락 했던 무대도,
바로 운현궁입니다.

오늘은 이 운현궁을 여행해 보기로 합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항상 조선말 역사의 중심에 서 있었던 '흥선대원군'을 만나보기로 합니다.

하늘이 많이 흐립니다만, 우산은 필요없습니다...
옷깃만 단단히 여미고 지금부터 종로의 운니동으로 출발~!!!





운현궁, 종로, 서울





운현궁, 종로, 서울



하늘은 지상에 무언가를 떨어뜨릴 기세입니다.
그것이 눈일지, 비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이렇게 잔뜩 찌푸린 날씨와 '겨울'이라는 계절적인 요인은,
이제는 '과거의 영화'에서 한발 비껴 서 있는 '운현궁'을 차갑고 쓸쓸한 이미지로 만들어줍니다.

아니 '차갑고 쓸쓸한' 이라기 보다는 '차분한'...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만일 어떤 대상을 표현할때, 표현에 대한 다양한 방법과 수단에 있어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진다면,
운현궁에 도착한 '오늘' 만은 긍정적이고 보다 '들어서 기분 좋을 만한' 단어나 문장을 선택하고 싶습니다.

이유는 '엉성한 여행자의 생일'이기 때문입니다.
생일이기 때문에 오고 가는 표현이 '편안하고 좀 더 완곡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굳이 '생일'에 찾지 않아도 되는 운현궁이었습니다.
그리고 '여행'을 위해 예정된 장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회색빛 하늘과 '많이 피곤해진 몸' 을 동반하고 장거리 운전을 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더욱이 생일이라면 더더욱......

시내에서 가볍게 식사하고, 조용한 곳을 찾아 운현궁으로 오는 내내 '눈'이 내렸으면...하는 바램을 가져봤습니다.

'왠지 눈이 내려야 제대로 된 생일의 모습일 것 같다...'
지금껏 '눈 없는 생일보다는 눈 내리는 생일'을 더 많이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수직사, 운현궁, 서울





수직사, 운현궁, 서울



운현궁의 정문을 지나자마자 전경을 사진으로 '한장' 담아주고 우측에 위치한 '수직사'로 다가갑니다.

수직사는 운현궁의 경비와 관리를 담당했던 사람들의 거처입니다.
한국전쟁 이후, 운현궁의 상당부분이 팔리면서 규모가 '현저하게' 축소된 운현궁입니다만,
흥선대원군 당시는 '대단히' 넓었던 곳이 운현궁입니다.

'잿빛하늘-사진에서는 분명히 하얗게 표현될-'이 수직사 위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싫어서
문고리 한장, 경비원의 의복 한장...이렇게 카메라의 화각과 시야를 좁혀서 사진으로 담아봅니다.

흐린날...은 화각을 좁히고 지상에서 '포인트'를 찾는 습관이 있습니다.

회색하늘에겐 미안하지만 멋없는 하늘부분은 가급적 최소화 하면서 말입니다... 





노안당, 운현궁, 서울





노안당과 굴뚝, 운현궁, 서울



운현궁의 사랑채이자 흥선대원군의 일상 거처로 쓰였던 '노안당(老安堂)'앞에 서 봅니다.

지금은 무거운 잿빛하늘 밑에 '눌려있는' 모습입니다만,
한때는 조선의 주요국가정책이 논의 되던 '하늘높은 줄' 모르던 곳이 운현궁의 노안당입니다.

당파와 문벌을 초월한 파격적인 인사정책,
비변사를 폐지하고 의정부를 부활시켰으며 삼군부를 두어 정무와 군무를 분리하는 등의 중앙관제복구,
지방양반이나 토호들의 부폐를 두둔하던 서원철폐,
다양한 경제개혁을 단행하며 이루어 낸 국가재정의 질서확립,
그리고 사회적 악습개량과 사치의 금지등을 대변한 복식개혁 등......

조선말의 시대상을 좌지우지하던 '굵직한 개혁정치'들이 이곳 노안당에서 논의 되었습니다.





노안당의 담, 운현궁, 서울





노안당의 굴뚝, 운현궁, 서울





노안당, 운현궁, 서울



그러고보면 고종이 왕위에 오른 초기 10년 동안, 흥선대원군의 섭정은 안팎으로 '꽤' 훌륭합니다. 
그리고 당시 흥선대원군의 행보와 정책에서 '그'가 얼마나 치밀하고 강직하며 똑똑한 인물이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긴 그 이전에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를 피해 시정 불량배들과 어울리며 '궁도령' 이라는 놀림까지 받은 그가,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만든 것만으로도 그의 '두뇌명석함'은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두뇌명석과 똑똑함' 이 '판단력'을 담보해 주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아니...둘의 관계를 '흥선대원군'에게 대입해보면 '완전히 별개'의 문제 같습니다.

'세계의 급박한 변화에 대한 어두운 판단력에서 오는 쇄국',
자신의 며느리인 '명성황후'에 대한 오판과 몰이해,
'국제정세에 대해 합리적이지 못한 판단에서 오는 엉성한 처신'으로 말미암은 수많은 '실수'들을 보면 말입니다...




운현궁, 서울



공자선생이 '노자(老者)를 안지(安之)하며...'라고 논어에 표현 한 문구가 인용되어,
'흥선대원군'에 의해 이름 지어진 '노안당' 입니다.

'고종'이 왕이 된 후,
 아들 덕택에 편안한 노년을 살게 되어 흡족한 '흥선대원군' 의 심정이 잘 드러나 보입니다.

만일 흥선대원군이 '노안당'에서 '왕의 아버지'의 위치만으로 만족하며 살았으면 역사는 어땠을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며 걸음을 다음 건물로 옮겨봅니다.





노락당, 운현궁, 서울





노락당, 운현궁, 서울



운현궁에서 가장 크고 가운데에 있어 중심이 되는 '노락당' 을 우선 사진으로 담아 봅니다.

정면으로는 10칸, 측면으로는 3칸이니,
사랑채로 쓰였던 정면 6칸, 측면 3칸의 노안당과 비교해서 보다 크고 웅장한 느낌이 듭니다.

노락당은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가 치러진 건물이었습니다.
명성황후가 왕비수업을 받은 곳도 이곳 노락당입니다.
또한 흥선대원군 일가의 회갑이나 잔치등에도 여지없이 제 기능을 발휘하던 곳입니다.





노락당, 훈현궁, 서울





노락당, 운현궁, 서울



'노락당이 굉장히 높아 하늘과의 거리가 한자 다섯치 밖에 안된다'

고종의 명을 받아 대제학 '김병학'이 지은 '노락당기(記)'에 서술된 표현입니다.

실제로 김병학에게는 노락당은 하늘과 '별반' 차이없는 곳이었을 듯 합니다.
당시 지상의 '하늘' 같았던 흥선대원군의 '집'에서도 가장 큰 건물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운현궁에서 '독보적인 안채'로 쓰이면서 '안방마님' 같은 역할을 하던 노락당은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를 계기로 안채의 구실을 부분적으로 잃게 됩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안방마님의 역할' 을 부여 받은 곳은......





이로당, 운현궁, 서울





이로당, 운현궁, 서울





이로당, 운현궁, 서울



1869년(고종 6년)에 정면 8칸, 측면 7칸으로 지어진 이로당입니다.

이로당은 철저한 '금남의 구역' 입니다.
바깥에서 남자들이 쉽게 들어오지 못하도록 건물 전체가 'ㅁ(미음)'자 모양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그렇다면 내부가 더욱 궁금해 집니다...
하지말라면 더 하고 싶고, 보면 안된다 하면 더 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어디 그렇다면 내부를 좀 들여다 볼까...'





이로당, 운현궁, 서울





이로당, 운현궁, 서울





이로당, 운현궁, 서울




여전히 밖으로부터의 문은 '굳게' 닫혀 있습니다.

하지만 안에서는 이로당의 내부를 '어느 정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비록 사람이 살지는 않아도 그 옛날 선조들의 '금남구역'을 들어 와 있는 기분이 말입니다.

흥선대원군이 아시면 '경'을 칠 일이겠지만 어쨌든...말입니다.





이로당, 운현궁, 서울





이로당, 운현궁, 서울





이로당, 운현궁, 서울




운현궁의 가장 왼쪽편에 위치한 이로당의 중앙정원에서 한참을 서성거려 봅니다.

우물도 보고, 예전에는 해시계가 놓였던 돌기둥도 보고, 그리고 사진도 찍고...

이로당에서 '해야 할 것'은 다했습니다.
그런데 왠지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습니다.

운현궁 안에는 '수직사, 노안당, 노락당, 이로당' 이 있으니 봐야 할 건물들은 모두 본 셈입니다.

하지만...... 
무언가 빼 먹은 것 같은 '갑갑함 혹은 허전함' 이 여행자의 주위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 '그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휘이잉...바람이 불고...여행자는 움직임이 없고...운현궁은 정적이 감싸고...'

그러다가 문득 '생각 하나' 가 뇌리를 스쳐 갑니다.

그래...이 기분...이 기분이 아닐까?...흥선대원군이 왕의 아버지를 넘어 '왕'같이 되기를 바랬을때의 기분은...

무엇인가를 끝내 놓고도, 아니면 끝났는데도 '아직 해야만 할' 뭔가가 남아 있다는...참을 수 없는 갈증의 무거움... 





운현궁, 서울




'이 집터가 원래 이런가 보군...!!!'

일정기간 동안의 아들을 위한 대리청정으로만 만족했다면
아마 흥선대원군은 '엄청나게' 개혁적이고 위대한 인물로 후세들의 평가를 받았을 지 모릅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두고두고 남을 '며느리와의 힘겨루기'의 주인공이 되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또한...자신의 종교를 지키느라 많은 이들이 죽는 불상사가 없었을지도...
또한 쇄국에 의해 '우리나라'의 발전이 상당기간 '지연'되는 일이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정말...'모릅니다...'입니다.
확실한 단정은 아닙니다.

흥선대원군이 아니었어도 역사는 '똑같은' 길을 가고 있었을지도......
당시 급변하고 요동치던 조선말 정세에 흥선대원군이 아니었다면, 
더 나쁜 길로 들어 섰을 지도...정말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안다의 여행이야기...다음으로 이어집니다...





운현궁,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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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운현궁이군요~ 예전에 한번 가보고 갈 기회가 없었는데
    이렇게 자세하게 보여주시니 감사합니다^^

    2010.12.21 14:13 [ ADDR : EDIT/ DEL : REPLY ]
  3. 사진보고 놀라고. 글읽고 두번 놀람.

    후손들의 눈에 판단착오로 보이는 결정들이 과욕(?)이었음을.
    당시에 대원군(언제나,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이 알수 있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무었이었을까요?

    2010.12.21 14:32 [ ADDR : EDIT/ DEL : REPLY ]
  4. 왜 난 이런 사진이 안나오는지... T.T
    일단 카메라부터 질러볼까요??
    이곳에 오면 항상 그런 생각을 하게됩니다~ T.T
    멋진 포스팅 잘보고갑니다.

    2010.12.21 14:34 [ ADDR : EDIT/ DEL : REPLY ]
  5. 사진으로 보니 또다른 느낌이네요. 이미 다녀오신 거니까 생일 지나신 거죠? 축하드려요.

    2010.12.21 14:3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6. 생각해보니 근처를 지나다기기만 했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이네요. 생각보다 보존이 잘된 것 같습니다.

    늦었지만 생일 축하드립니다..^^

    2010.12.21 14:5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7. 운현궁이 생각보다 꽤 크네요..
    ㅈ는 아직 가 본적이 없습니다.
    안다님 그리고 여행포스팅 말미에 지도를 첨부해 주시면 안될까요?
    읽고 가보고 싶은 사람들 가 보게요~ㅎㅎ

    2010.12.21 14:5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8. 이렇게 안다님께서 이쁘게 담으신까 운현궁이 새롭게 보이네요~^^

    2010.12.21 15:5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9. 아이고... 먼저 생일축하합니다!!!
    근데 포스팅 사진을 보니 어두침침~한게...
    축하보다는 위로를 드려야할 것 같은 분위기군요. ^^;;;
    지나간 역사... 때론 아쉬움이 너~무 크죠!!!

    2010.12.21 17:08 [ ADDR : EDIT/ DEL : REPLY ]
  10. 운현궁을 속속들이 보고 가네요.
    한장 한장이 전부 작품사진같습니다.^^

    2010.12.21 17:1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1. 많이 늦었네요~~ 생일 축하해요~ ^^ 안다님~ ㅋㅋ
    저는 항상 시험기간에 생일이 걸려있어서~
    몇년동안 제대로 생일을 즐기지도 못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도 별반 틀릴것은 없지만요~ ^^
    안다님처럼 의미를 두고 기념일날 여행을.. 그것도 사진기와 작은 메모지 하나 들고
    떠나는 것도 정말 좋은 일일 것 같습니다. ^^
    눈이 펑펑 내리면 정말 멋진 생일이었을텐데~~~~~ 앞으로 내릴 눈들이 잠시 한눈 팔고 있었나보네요~ ^^
    즐거운 하루 마무리 하시길 바랄게요~ ^^ 힛힛~!!! ^^

    2010.12.21 17:5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2. 아름답네요..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꼭 들려봐야겠습니다..^^
    늦었지만 생일(생신이라 하면 화내실까봐..^^;) 축하드립니다~!!

    2010.12.21 19:3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3. 우리나라 전통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2010.12.21 19:4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4. 천주교인입니다만, 흥선군 당시의 순교를 곱지 않게 생각합니다
    종교의 꽉 막힌 피폐성의 단면 ...입니다

    사람은 다 가고 없어도 건물이 남아 당시의 역사를 말해주는 군요 ...잘봤습니다 ^^

    2010.12.21 20:4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5. 청솔객

    참 고즈넉한 무거운 분위로군요.
    행사가 있을때 갔더니 장터처럼 복잡해서
    씁쓸한 기분으로 돌아 왔습니다.^^*

    2010.12.21 23:33 [ ADDR : EDIT/ DEL : REPLY ]
  16. 파란만장한 조선말의 역사를 증인하는 운현궁, 과거의 영광을 뒤로한채 지금은 도심 속 한켠에 조촐히 자리잡아 방문객들을 맞이하네요..

    2010.12.22 01:2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7. 어머나... 사진이 정말예술이십니다!!!
    사진에 사짜도 모르는 저도 느낄수 있는 사진 구도하며...
    어찌저리 색감이 살이 있을까요?? 제 모니터가 좋은건가요?? ㅎㅎㅎㅎ
    (첫방문에 주접을 떠는것 같습니다..T_T실례했습니다.)

    아, 생신 축하드립니다.^0^ 생일날은 축하받으셔야 마땅하니까요~^0^

    2010.12.22 02:2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8. 돌담

    한옥이 현대의 건물과 이렇게 잘 어울릴줄 몰랐습니다.
    대단한 구도입니다.^^

    2010.12.22 06:14 [ ADDR : EDIT/ DEL : REPLY ]
  19. 싹수

    운현궁 구경에 운현궁에 얽힌 이야기까지
    다시 찾아봐야 겠어요. ^^

    2010.12.24 13:44 [ ADDR : EDIT/ DEL : REPLY ]
  20. 조선을 침략한 일본
    매국노 친일파들이 장악한 남한
    삐뚤어진 대한민국의 역사
    우리가 알고 있는 대원군은 이런 연장선 상에 있습니다
    순수한 우리 민족의 눈과 마음으로 대원군을 바라 보아야 할 것입니다
    침략국 일본과 매국노 친일파들의 판단은 배제하고

    2011.01.17 20:0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1.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2011.01.17 20:0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